• 방문자수
  • 오늘44
  • 어제216
  • 최대2,962
  • 전체 97,170

시 조

시 조

ma01.png 김알지(金閼智)

 

 

한자 金閼智

● 분야 역사/고대사

● 유형 인물

● 시대 고대/남북국

● 성격 씨족장시조

● 성별 남

● 생년 65년

● 몰년 미상

● 집필자 이형우

 

 

[정의] 65(탈해이사금 9)∼? 신라 상대의 씨족장. 경주김씨의 시조.

[개설]≪삼국사기≫에 따르면, 탈해이사금 9년에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속에서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호공(瓠公)을 보내 살펴보게 하니, 황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궤에서 빛이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보고 돌아와 왕에게 고하니, 왕이 친히 가서 궤를 열어 보자 용모가 수려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이를 국호로 삼았다. 탈해왕은 이 아이를 거두어 길렀는데 금궤에서 나왔다고 해 성을 ‘김’씨로 했으며, 성장하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 ‘알지’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도 알지 설화가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삼국사기≫와 약간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은 내용이다. 즉, 박·석 양 씨보다 먼저 경주 지역에 정착했으나 정치적으로는 뒤에 비중이 커진 김씨 부족이 그들의 토템인 닭과 그들의 조상을 연결해 이 같은 설화를 탄생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알지’라는 명칭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 ≪삼국유사≫에서는 그것이 ‘아기’라는 뜻이라고 했으며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를 따르기도 했으나, 근래에는 ‘Ar’ 부족, 즉 ‘금(金)’ 부족의 족장이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알지의 아들은 세한(勢漢 또는 熱漢)이며, 그 뒤의 계보는 아도(阿都)·수류(首留 또는 水留)·욱보(郁甫 또는 郁部)·구도(俱道 또는 仇刀)로 이어지고, 구도의 아들은 김씨로서는 최초로 왕위에 오른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이다. 미추이사금은 알지의 7대 손이 된다.

 

 

신라김씨 시조 대보공(大輔公 諱 閼智)

 

시조인 대보공(휘 알지)은 서기 60년(신라 탈해왕 4년) 8월 4일, 신라의 서울인 서라벌(금성) 서쪽 계림(鷄林, 또는 始林)의 숲속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금궤(金櫃)에서 태어났다. 탈해왕은 <하늘이 준 아들>이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씨를 김씨로 사성(賜姓)하였다.

 

금궤 속에서 나온 동남(童男)이 마치 박혁거세(朴赫居世)의 고사와 같으므로(혁거세가 알지라고 한) 그 말로 인하여 '알지'라 이름 했다. 이 '알지'는 향찰(鄕札-순 우리말을 한자의 음과 훈을 빌어 표기하던 신라시대의 문자)로 표기한 것으로 '소아(小兒), 아이, 아기'를 일컫는다.

 

당시 탈해왕(脫解王)은 '알지'를 태자로 책봉했으나 후에 알지는 이를 사양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으며 그 6대손인 '미추(未鄒)'가 왕위에 올랐다. '알지'를 신라김씨의 시조로 모신다.이에 대한 <三國遺事>(一然 著)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永平3年 庚申(一云 中元 六年. 誤矣. 中元盡二年而已), 八月四日, 弧公夜行月城西里, 見大光明於始林中(一作鳩林), 有紫雲從天垂地, 雲中有黃金櫃, 掛於樹枝, 光自櫃出, 亦有白鷄鳴於樹下.以狀聞於王, 駕幸其林, 開掛有童男, 臥而卽起, 如赫居世之故事, 故因其言, 以閼智名之. 閼智卽鄕言小兒之稱也. 抱載還闕, 鳥獸相隨, 喜躍 足倉足倉 .王擇吉日, 冊位太子. 後讓於婆娑不卽王位, 因金櫃而出, 乃姓金氏, 閼智生熱漢, 漢生阿都, 都生首留, 留生郁部, 部生俱道(一作仇刀), 道生未鄒, 鄒卽王位, 新羅金氏自閼智始.

 

<해석>

영평3년(서기 60년, 탈해왕 4년) 경신(혹은 중원 6년이라고 하나 잘못이다. 중원은 2년 뿐이었다.) 8월 4일에 호공이 밤에 월성(月城)의 서리(西里)를 걸어 가고 있었는데, 큰 광명이 시림(始林-혹은 鳩林이라고도 한다) 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자주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뻗쳐 있었고, 그 구름 속에는 한 황금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빛은 바로 그 궤로부터 나오고 있던 것이었고, 그 나무 밑에서는 흰닭이 울고 있었다.

이 모습을 왕(석탈해왕)께 아뢰자 왕은 친히 그 숲으로 행차하였다. 그리고 왕이 그 궤를 열어 보았더니 그 속에서는 어린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누워 있다가는 곧 일어났다.이것은 마치 혁거세의 고사와 같았는데(혁거세가 알지라고 한) 왕은 그 말로 인하여 '알지'라고 이름하였다. 알지는 곧 우리말로 '아기(小兒)'를 일컫는다. 왕은 이 사내아이를 안고 대궐로 들어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라와 뛰놀고 춤추었다.

 

왕은 길일을 택하여 세자로 책봉했으나 (알지는) 뒤에 파사왕에게 사양하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씨라 했다.알지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仇道 혹은 仇刀라 함)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올랐으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에서 시작되었다.

 

<三國遺事>李丙燾譯.大洋書籍 刊. 1972. p104)

 

gjkimyu011.jpg

 <鷄林:대보공 탄강지. 경주시 >

 

gjkimyu012.jpg

<금궤도(金櫃圖)> 소개 (대보공 탄강 신화 관련 그림)

 

원문

御製(어제)此新敬順王金傅始祖金樻中得之仍姓金氏者(차신라경순왕김부시조금궤중득지잉성김씨자)

金樻掛于樹上其下白鷄鳴(금궤괘우수상기하백계명)

故見而取來金樻中有男子(고견이취래금궤중유남자)

繼昔氏爲新羅君也(계석씨위신라군야)

其孫敬順王入高麗嘉其來順諡敬順(기손경순왕입고려가기래순시경순)

歲乙亥翌年春命圖見三國史(세을해익년춘명도견삼국사)

吏曺判書臣金益熙奉敎書(이조판서신김익희봉교서)

掌令臣趙涑奉敎繕繪(장령신조속봉교선회)

 

1) 작가 : 조속(趙涑. 1595-1668).

조선 중기의 서화가.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희온(希溫), 호는 창강(滄江) 또는 창추(滄醜). 병조판서에 추증된 수륜(守倫)의 아들이며, 문인 화가 지운(之耘)의 아버지. 시서화 삼절로 일컬어졌으며. 특히 까치를 잘 그려 '조까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이 분야의 대표적 화가로 꼽힌다. 대표작으로는 <고매서작(古梅栖鵲)〉과 <매작도(梅鵲圖)〉 외에 공필(工筆)로 그린 채색의 <금궤도(金櫃圖)〉가 있다.

 

2) 제작년도 : 1635(인조 13)

3) 종류 :비단에 채색

4) 크기 : 105.5cm x 56cm

5)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6) 작품 해설: 조속의 <금궤도>에는 위쪽에 이 그림을 그린 뜻과 화가의 이름이 적혀 있어서 회화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채색화인 이 그림은 중앙에 큰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 금궤가 매달려 있으며, 밑에는 흰 수탉이 울고 있다.

 

위쪽에 적힌 내용으로 보아 신라 김알지의 시조 설화(始祖說話)를 소재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진한 채색을 써서 장중하게 표현하였는데, 채색화가 드문 조선시대의 채색화 전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수묵화가로 유명한 조속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금궤가 매달린 나뭇잎의 모습이나 배경의 구름이 신화의 내용에 더욱 환상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맨위로